시간대별 시위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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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사 앞
1926년 6월 10일 아침 일찍부터 순종을 추모하기 위한 인파로 장의행렬이 지나가는 길은 인산인해였다. 총독부는 창덕궁 돈화문에서 을지로 2가, 을지로 4가까지 도로 양쪽앞 열에 ‘의장대’ 명목으로 무장한 기마경찰과 헌병을 도열시켰다. 또 다음 열에는 지도교사의 인솔 하에 고등보통학교생과 전문학교생 21,000명을 배치했다. 일반시민 추모객들은 그 뒤편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바깥으로는 무장 군인들이 늘어섰다. 시민들의 시위를 군경과 학생들로 막겠다는 일본의 작전이었다.

오전 8시 추모객들의 호곡 속에 상여가 돈화문 앞을 출발해 장지인 금곡을 향해 종로3가 쪽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8시30분 장의행렬이 종로3가 단성사 앞을 통과할 무렵 동양루(현 피카디리 극장 앞) 쪽에서 이선호가 도로 중앙으로 뛰어나오면서 한 뭉치의 ‘격문’을 뿌리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쳐댔다.

이선호의 선창이 있자 박용규, 이동환, 류면희, 조홍제, 임종업, 이현상, 최제민, 권태성 등이 대열 앞으로 나서 ‘격문’을 뿌리고 ‘조선독립만세!’를 계속 불렀다.

경찰에 붙잡힌 이선호는 트럭에 실려가면서도 결박을 당한 양손을 치켜들며 연신 만세를 부르자 중앙고보생들이 호응해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당했다. 당시 현장에서 붙잡힌 사람은 중앙고 69명 등 거의 100여명에 이른다.

이때 중앙고보 체육교사인 조철호(조선소년군의 창시자)는 제자 이동환으로부터 거사계획을 듣고는 도열순위를 요청대로 편성한 뒤 현장에서 학생들을 선동하다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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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교와 훈련원

청계천 관수교 부근에서 기마경찰과 충돌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격문’을 뿌리며 만세를 부른 사직동계 이병립 박하균과 함께 공청계인 권오상(연희전문 2년) 한일청(〃) 등 연희전문, 보성전문 학생 40여명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어 관수교 양편 장사동에서 세브란스 의전생들이 ‘격문’을 뿌리며 만세를 불렀으며 4명이 붙잡혔다. 9시30분에는 장의행렬이 도립사범학교(현 국립중앙의료원) 앞을 통과할 때 YMCA 박두종 등이 ‘격문’을 뿌리며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됐다. 경성제대 예과 이천진은 훈련원 봉결(영결)식장 뒤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붙잡혔다. 시위는 사범학교 담이 무너질 정도로 격렬했다.

오후 1시경에는 훈련원 재전 부근에서 학생 1명이 옛 한국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불렀고, 10분 뒤 대여가 동대문부인병원(전 이대 부속병원)을 통과하자 시대일보 배달부 김낙환과 청년 몇 명이 ‘격문’을 뿌리며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당하였다.

오후 1시 30분경 창신동 채석장 입구에서 경북 군위사람 홍종현이 혈서로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불렀으며, 또 고무회사 앞에서 학생 수명이 ‘격문’을 뿌리며 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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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

오후 2시 20분경 동묘 앞에서 중동학교 황정환 곽대형 김재문 등 통동계 학생들이 ‘격문’을 뿌리며 만세 시위를 하다 모두 체포당하였다.

6․10만세운동 전공자인 국민대 장석흥 교수는 세 갈래의 주동 세력이 각각 역할을 분담해서 동대문까지는 사직동계, 동대문 밖은 통동계, 지방은 공청-천도교계가 맡기로 사전에 약속되어 있었다면서 유기적 협의가 있었다고 추정했다.

연이어 시위가 벌어지자 일본 군경은 칼을 빼들고 위협하며 추모객을 해산시켰다. 기마병들이 시위가담자들을 잡으려고 군중 사이를 휘젓고 다녀 많은 사람이 부상당했다.

일제 기마병과 군경의 삼엄한 경계와 진압 탓에 일반군중의 호응도는 높지 않았다.

제2의 6 ․ 10만세운동

서울에서 터진 독립만세운동은 전달된 격문이나 귀향한 추모객들을 통해 지방으로 전달되었다. 전북 고창고보 학생 50여 명이 요배식에서 돌아오다가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 또 인천 만국공원에서 청년 수십명이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 밖에 순창, 정주, 군산, 대구, 나주, 울산, 평양, 홍성, 공주, 파주 등 전국 각지의 주민, 학생들이 추모식, 동맹휴학을 단행하는 등 6·10만세운동의 여파는 계속 확산되어 갔다. 시위에 이르지 못했지만 벽보, 편지, 태극기 게양, 망곡을 통해 일제에 항거의 뜻을 나타냈다.

6·10만세운동 이후 배재고보 문창모 손성엽 염필주 차진호 김조영 황규섭, 협성학교 최영식 손병석 김승호, 피어선 성경학원 유재현 노응벽, 기독교 청년학원 김동석 등 시내 각 기독교 학교 대표 13명이 6월16일 피어선성경학원에 모여 ‘제2의 6․10만세운동’ 추진하다 고등계 형사들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들을 모두 기소유예처분을 받고 15일만에 철창에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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