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야

순종이 4월 25일 승하하자 전국 도시들마다 가게 문을 닫고 애도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공립학교는 적극적으로 추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사립학교들은 학생과 학교가 수업을 중지하고 추도했다. 중앙고보와 보성고보는 상복을 처음 입는 성복일인 5월1일까지 휴학하고 근신했다.

더 적극적인 움직임도 나타났다. 4월 28일 오후 1시 10분 창덕궁 서쪽 금호문 앞에서 열혈청년인 송학선은 차를 타고 조문하러 오던 국수회 지부장 타카야마와 경성부협의회 의원 이케다를 사이토 총독으로 잘못 알고 칼로 찔러 타카야마를 숨지게했다. 송학선은 이듬해 사형을 당했다.

6월2일 조선일보 기자 홍순정과 김동헌 등이 만세를 계획하다 붙잡혔고, 중국 상해에서 ‘우리 모듬단’을 조직해 활동하던 박영호 김응렬이 폭탄과 권총을 휴대하고 국내로 잠입하다가 체포당했다. 또 상해 임시정부를 지지옹호하며 일제 주구배 숙청, 밀정 엄단제거, 적의 주요인물 사살, 적의 주요시설 파괴응징 등을 목적으로 활동하던 병인의용대의 고준택 김석룡 이영선 김광선 등이 주요기관을 폭파하고 고관을 죽이기 위해 중국인으로 변장하여 중국 상선 순천호를 타고 출발하였다가 중국 황포탄 하류에서 일본 수상경찰의 수색을 받아 6월1일 체포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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