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자료실

백범 김구 선생의 한국국민당 6.10만세운동 10주년 선언서

작성자
610manse
작성일
2020-12-07 01:58
조회
570
기념사업회 부회장인 박찬승 교수가 최근 국사편찬위 한국독립운동사 자료집을 보다가 만난 자료입니다. 한국국민당은 1935년 11월 임시정부를 이끌던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 이동령, 조완구, 안공근, 이시영 등 이른바 민족주의 인사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國史編委編 韓國獨立運動史 資料 3卷 p.450~451



韓國國民黨은 6·10萬歲運動紀念日을 맞아 다음과 같은 宣言書를 발표하다.



6.10運動을 紀念하라

10年前 이날에 한양 城中에서는 大韓獨立萬歲의 고함이 三角山을 진동하고 漢江水를 搖盪하였다. 마치 火山속의 硫黃質이 항상 燃燒되면서 噴火口를 찾듯이 三·一운동에서 일시 물러선 한국 민족의 혁명적 氣焰도 땅속에서 은근히 타오르면서 다시 폭발할 기회만 기다렸든 것이다. 과연 붉은 정성과 꾸준한 노력이 헛되지 아니하여 8年만에 그 불꽃이 땅위로 다시 폭발하면서 청천의 벽력과 같은 大韓獨立萬歲 소리가 다시 일어나니 이것이 곧 6·10運動이다.

이날이 隆熙皇帝의 因山이었다. 검은 구름은 한양의 하늘을 가리우고 南山의 松林은 긴 한숨을 지었다. 東海의 日光은 빛을 잃었고 漢江의 푸른물도 목이 메었다. 이와 같이 陰鬱沈痛한 低氣壓이 全國에 가득한 때에 떠나가는 그의 길에 한줄기 눈물이라도 뿌리려고 각처에서 모여든 群衆이 數10萬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나라를 잃고서 呪咀와 원한만 받든 그를 참으로 슬퍼함이랴 오직 그가 지고가는 그 5千年 歷史를 붙들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 뿐이다. 남과 같이 가졌든 그 국가의 최후 主權者의 마지막 길을 조상하는 것뿐이다. 20年에 가까운 긴 세월이 쌓이고 쌓인 亡國恨을 못잊히어 통곡하던 것뿐이다. 이 反面에 三·一運動으로 因하여 驚弓之鳥가 된 왜적은 크게 不安과 恐怖를 느끼어 기치 장검으로 그 群衆을 철통같이 抱衛하고 萬一을 경계하였다. 왜놈의 압박이 심할수록 群衆의 반감은 더욱 강하여 살기 衝天한 中에서 그들의 가슴속에 잠재한 革命의 火藥庫는 畢竟터졌다. 獨立自主하는 새나라를 세우려는 그들의 渴望은 大韓獨立萬歲의 獅子吼로 變하고 말었다.

6·10運動은 三·一運動의 계속이었다. 그 威力과 지구성은 三·一運動보다 많이 떠러졌으나 그 精神만은 一致하였다. 물론 客觀的 情勢의 不利와 內部의 조직기술과 투쟁력 不足으로 인하여 6·10운동도 一時 退守치 아니치 못하게 되었으나 우리 戰爭사상에 있어서 三·一운동 다음으로 중요한 페지를 가졌다. 그러므로 三·一정신을 계속하여 악전고투하고 있는 우리는 6月 10日을 紀念치 아니 할 수 없으며 그 紀念을 기념답게 기념하려면 조국광복과 민족해방을 爲하여 우리 자신이 남보다 먼저 최전선에서 왜적을 衝殺하기를 더욱 굳게 결심할 것이다. 혁명동지여 이날을 어찌 無心히 지내랴.

大韓民國 18年 6月10日

韓國國民黨